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(문단 편집) == 상정과 가결 == [[https://likms.assembly.go.kr/bill/billDetail.do?billId=027886|국회 의안정보시스템]] [[2004년]] [[3월 11일]] 당시 [[새천년민주당]] 원내총무 [[유용태]] 의원과 [[한나라당]] 원내총무 [[홍사덕]] 의원이 [[https://likms.assembly.go.kr/bill/billDetail.do?billId=027886|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공동발의]]하였다. [[https://www.joongang.co.kr/article/307248#home|盧대통령 탄핵안 발의]] 당시 국회 원구성을 살펴보면 한나라당이 141석으로 제1당에 위치했고 새천년민주당은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인해 62석으로 줄어든 상황이었다. 한나라당과의 협력 없이 민주당의 단독으로는 탄핵 소추안을 상정할 수 없었다. 단, 3월 9일 제안된 탄핵소추안과 달리 3월 4일 새천년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를 전제로 한 조건부 탄핵안을 '''결의'''했다. 탄핵소추안이 아닌 조건부 탄핵안이자 상정이 아닌 결의였다.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를 거부하자 정국은 탄핵 소추로 향했다. [[https://news.kbs.co.kr/news/view.do?ncd=550879|민주.한나라, 대통령 탄핵 공조 논의]] [[https://news.kbs.co.kr/news/view.do?ncd=552185|내일 탄핵안 의결, 정치권 초긴장]] [[http://www.ohmynews.com/NWS_Web/View/at_pg.aspx?CNTN_CD=A0000173530|침통한 '우리당' 72시간 국회농성 돌입 민-한 '의회 쿠데타', 격랑의 탄핵정국]] 그러나 당시 여당이었던 [[열린우리당]]이 강력히 반대하면서 [[3월 11일]] 당일 본회의 상정은 무산되었다.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001&oid=052&aid=0000180510|3월11일자 YTN 돌발영상 "별짓"]] [[https://news.kbs.co.kr/news/view.do?ncd=552541|탄핵안 표결 처리 대치]] [[https://news.kbs.co.kr/news/view.do?ncd=552719|탄핵안 표결 내일로 연기]] 본회의 당일 상정이 무산되자 [[열린우리당]]을 제외한 야당 연합은 반드시 탄핵 소추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며 국회를 압박했고 결국 다음 날인 [[3월 12일]] 국회 의장석을 점거한 [[열린우리당]] 의원들과 상정하고자 하는 야당 의원들의 몸싸움이 벌어졌는데 [[한나라당]] 출신의 [[박관용]] 국회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하여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몰아낸 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기어이 상정하였다. 대통령 탄핵 소추안은 '''[[날치기#s-2.1|안건 소개나 찬반 토론도 생략한 채 진행]]'''[* [[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|12년 뒤의 탄핵안 의결]] 때는 절차대로 [[김관영]] 당시 국민의당 원내수석이 제안설명을 진행하고 여야 의원을 모두 감표위원으로 지명하는 등 깔끔하게 의사진행을 했다.]됐다. 결국 이날 11시 55분경 열린우리당의 불참 속에 찬성 193명 반대 2명으로 '''대통령(노무현) 탄핵 소추안'''이 가결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